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라구치 후미히토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고교 시절부터 준수한 타격 실력과 강한 어깨를 갖추고 있어 2009년 한신은 하라구치를 계약금 3,000만엔, 연봉 480만엔에 계약했다. 당초 [[한신 타이거스]]는 하라구치를 당해 입단한 [[조지마 겐지]] 이후의 '포스트 조지마', 차기 주전 포수로 고려하고 있었다. 입단 당시의 등번호는 52번. 하라구치는 메이저에서 복귀한 베테랑 [[조지마 겐지]]가 은퇴하는 2012년까지 그의 훈련에 동행할만큼 열정이 있었고, 입단 후 2년 간 2군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한신 타이거스는 주전 포수였던 [[야노 아키히로]]와 [[조지마 겐지]]가 각각 2010, 2012 시즌 후에 은퇴하며 포수진의 공백이 생겼고, 주전감이 없어 주전 포수 경쟁이 심화된 가운데, 하라구치는 시즌 초 허리부상에 연거푸 시달리며 부진에 빠졌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선수 공시를 거쳐 육성선수로 전환, 124번을 등번호로 달게 되었다.[* NPB 규정 상 세 자리 수 등번호는 육성 선수가 달게 되어있으며, 육성 선수는 1년마다 계약을 하는, 사실상 비정규직 선수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여러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육성 선수 재계약을 하며, 하라구치는 [[조지마 겐지]]를 목표로 삼고 끊임없이 연습에 전념했다. 하라구치의 3년의 육성 선수 계약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강력한 스윙이었고, 때문에 2014년, 2015년에는 1루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2014년에 입단한 [[우메노 류타로]]가 무주공산이던 한신 주전 포수 자리에 앉았고, 백업 자리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FA 이적한 쿠보 야스토모의 보상선수로 츠루오카 카즈나리를 영입해[* 당시 한신에 있던 [[오승환]]의 전담 포수로 여러 경기에 나왔다.] 졸지에 포수 자리가 없어졌다. [[카케후 마사유키]] 2군 감독과 2010년 은퇴하고 해설위원을 하였던 [[야노 아키히로]] 배터리 코치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강타자와 강한 어깨를 소유한 포수로 성장했다. 야노 코치가 하라구치를 "야구에 열심히 임하는 노력형 선수"라고 평가할 정도로 매일 매일 선수 기숙사 옥상에서 혼자 연습했다고 한다. 2016년에는 다시 정규 선수로 등록되어 등번호 94번으로 변경. 공수에서 활약하며, 포수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는 1루수 및 외야수로 출장하였다. 공격형 포수로서 맹타를 휘두른 하라구치는 5월 리그 MVP에도 뽑히며, 일본야구 역사상 육성선수 출신이 1군의 MVP를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